의학은 ‘암’이라는 질병을 정복하기 위해 지난한 역사를 거쳐 발전해왔으며, 최근 가장 유망한 치료법으로 각광 받고 있는 것이 면역항암치료이다.
암이 인체에서 발생하고, 성장하며, 전이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체내 면역 체계의 공격을 교묘하게 회피할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암의 매커니즘을 타겟으로 하여, 인체 면역 시스템을 조절하여 암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면역요법들이 개발되었다.
면역항암치료요법의 기본 원리는 암세포를 찾아 파괴하기 위해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면역요법도 몇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인터페론이나 인터루킨 등의 사이토카인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단백질은 면역 세포들 간의 신호 전달의 역할로, 세포의 활성을 촉진하여 ‘면역계 조절자(Immune System Modulator)’라고 부른다.
두번째로는 많은 제약사들이 선택하고 있는 단일클론 항체(Monoclonal antibodies)를 이용한 면역요법이다. 주로 PD-1, PD-L1, CTLA-4를 타겟으로 하는 항체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들은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인자/인자수용체를 막아 암에 대한 면역 반응을 재활성화시키는 항체로,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라고 부른다. 특히 PD-1, PD-L1을 타겟으로 하는 면역관문억제제가 가장 성공적인 약물로 개발되고 있다. 이외에도 아비드 바이오서비스의 전신인 페레그린 파마의 바비툭시맙(Bavituximab)은 암세포의 표면에서 발현하는 포스파티딜세린(Phosphatidylserine)을 타겟으로 하는 항체를 개발하였다.
그 외에도 결핵백신 BCG(Bacille Calmette-Guérin), 세포에 기반한 골수이식, CAR-T 등이 새로운 면역요법으로 연구개발 중이다.
▣ 고대 이집트 때부터 시작된 면역항암치료법
고대 이집트에서는 발열을 일으켜 종양을 없애는 방법이 존재했다. 이후, 그리스 의사 클라우디우스 갈렌(Claudius Galen, AD 130~200년)이 처음으로 암이 염증성 병변에서 진화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1868년, 독일 의학자 펠라이젠(Fehleisen)과 부쉬(Busch)는 종양환자들에게 박테리아 질병을 감염시켰을 때 종양이 현저하게 축소된 것을 관찰했고, 이 결과는 면역 체계의 활성화가 암 치료에 조절자 역할로서 작동하였음을 시사한다.
▣ 1800년대 : 최초의 면역치료제의 발견
뉴욕의 외과의사 윌리엄 B 콜리(William B Coley)는 다른 보고서에서 급성 박테리아 감염 후에 종양이 자발적으로 완화되었다는 사례를 보고, 고름사슴알균(Streptococcus Pyogenes)과 세라티아 마르센스균(Serratia Marcescens) 혼합물(콜리 톡신, Coley’s toxins)을 수술 불가 환자들에게 40년 동안 주사하며 예후를 관찰하였다. 결과적으로 1000명 이상의 환자들이 완치되었음을 보고하였고, 이는 최초의 면역치료제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로 콜리는 ‘면역요법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즈음, 미국의 의사 조지 독(George Dock)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이용한 백혈병 환자의 종양 완화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1800년대 후반, 항원-항체 반응에 대한 연구와 함께 종양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면역 체계가 종양을 인식하는 항원, 즉 종양 관련 항원(Tumor-Associated Antigens, TAAs)을 발견하였고 과학자들은 이들을 타겟하여 결합할 수 있는 항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면역요법의 작용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도 부족으로, 이를 대체하여 전통적인 외과적 치료법과 함께 화학 요법이 1940년부터 승인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백혈구로부터 발견된 사이토카인인 인터페론, 결핵 관련 BCG 박테리아의 항암효과 등의 연구가 부각되면서 면역요법은 다시 새로운 항암치료 접근법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1990년 BCG백신은 FDA로부터 방광암에 대한 승인을 받아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 1900년대 : 현대적 면역치료제의 개발
미국의 로버트 갈로(Robert Gallo) 연구팀이 T 세포의 성장인자인 인터루킨-2(IL-2)를 확인함으로써, T세포 면역학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 암에 대하여 억제된 면역반응을 촉진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1950~1960년대로 이어진 인터페론 초기 연구에 이어, 1986년에는 인터페론 알파-2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면역항암치료제가 FDA로부터 승인되었다. 최초 적응증은 유모세포 백혈명(Hairy-cell leukemia)였지만, 이후 흑색종 임상에서도 승인 받았다.
사이토카인과 BCG 백신을 이용한 면역항암제의 성공 이후, 면역요법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었다. 1987년 장 프랑수아 브루넷(Jean-Jean-François Brunet)이 최초로 면역 관문 분자인 CTLA-4를 발견하였고, 1995년 제임스 앨리슨 박사가 CTLA-4를 차단하면 종양에서 T세포 반응이 활성화 될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했다. 다른 면역 관문 분자인 PD-1은 1992년 일본의 혼조 다즈쿠가 발견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T세포의 기작과 암세포에 대한 적용 가능성에 대한 이해도 증가로 이어졌으며, 후에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himeric antigen receptor T cell, CAR-T) 개발의 근간이 되었다.
▣ 2000년대 : 면역관문억제제의 첫 승인
2011년 BMS(Bristol Myers Squibb)의 ‘여보이(Yervoy)’가 첫 면역관문억제제로서 FDA의 승인을 받았다. 여보이는 항-CTRA-4 단일클론 항체로, 세포독성 T 세포의 억제 매커니즘을 조절하여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인식하고 파괴한다. 여보이의 적응증은 흑색종에서 출발하여 대장암과 간세포암으로도 확장되었다.
이어 2015년, MSD의 ‘키트루다(Keytruda)’가 승인되었다. 키트루다는 또 다른 면역관문인 PD-1을 타겟하며, 현재 17개의 적응증 승인을 받아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약품이다.
자연적 바이러스를 사용한 항암치료 연구는 1970년대에 대부분 중단되었지만, 암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을 증강시키는 바이러스를 사용하는 ‘종양 바이러스 치료(Oncolytic virus therapy)’에 대한 연구는 최근 다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바이오벡스(Biovex)의 ‘티벡(T-VEC)’은 2015년 FDA로부터 흑색종에 대한 치료제로 승인되었다. 티벡은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함과 동시에 체내 면역 체계를 자극하여 스스로 암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기전이다. 현재까지는 티벡이 유일한 합성 바이러스 치료제이지만 수백 개의 다른 바이러스 항암제가 다양한 암종에 대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 면역관문억제제의 진화 : 병용 요법의 도입
세포기반 면역항암치료제인 노바티스의 CAR-T 치료제 ‘킴리아(Kymriah)’가 2015년 FDA로부터 승인 받으면서, 화학 요법이나 다른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한 급성 림프구 백혈병 환자들의 치료가 가능해졌다. 2018년엔 B세포 림프종도 적응증으로 추가되었다. 1년 후, 길리어드의 ‘예스카타(Yescarta)’가 거대 B세포 림프종 치료제로 승인되었다.
그러나 위의 두 치료법은 특정 말기 혈액암 환자만 이용할 수 있고, 경제적 측면에서 환자들에게 부담이 되며 고형암에 대한 CAR-T 적용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또한 장기 반응이 불가능하고 면역 관련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면역항암치료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치료법이 면역관문억제제 병용 요법이다. 이것은 면역항암제와 화학요법을 결합하는 접근법으로, 암세포가 면역 체계를 회피하기 위해 여러 매커니즘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단독 요법 이상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착안한 치료 요법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여보이와 BMS의 PD-1 억제제의 ‘옵디보(Opdivo)’ 병용 요법은 2015년 최초의 복합 면역치료제로, 흑색종에 대한 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고형암에서는 면역관문억제제가 효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고형암은 암세포가 성장하기 용이한 조건의 종양미세환경을 갖고 있어 면역 세포의 침투 등에 불리하고, 따라서 면역관문억제제가 작동하지 못해 종양 치료가 어렵다. 이러한 고형암종을 ‘차가운 종양(Cold tumor)’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차가운 종양’을 ‘뜨거운 종양(Hot tumor)’로 바꾸어 치료하려는 연구가 시도되고 있는데, 차가운 종양을 뜨거운 종양으로 바꾸는 것으로 알려진 사이토카인 IL-2는 독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 시카고대 프리츠커 분자공학부 연구진이 새로운 약물전달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독성 문제가 감소하고 종양의 축소가 이루어지는 것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면역관문억제제와 함께, 차가운 종양에서 뜨거운 종양으로의 전환 접근법의 병용이 암 정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참고 : 면역요법은 수천년 이어온 ‘암 사냥꾼’…병용요법 새 무기 ‘장착’, 박찬영 기자 (http://www.medisobiz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7236)